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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선천성 질환과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대법원, 2020-04-29 선고, 2016두41071 판결) 2020-09-16 15:07:19
작성자   세이브 노무법인 minah_jeon@naver.com 조회  611   |   추천  68
첨부파일 :  1600236439-84.pdf

 

 

【판결요지】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므로, 개별 법률에서 예외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한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다. 산재보험법에는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별도의 규정이 없으므로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母)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한편,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므로, 장해급여와는 달리 그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반드시 노동능력을 상실할 것을 요건으로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2009년 A의료원에서 임신한 간호사는 모두 15명으로, 이들 중 비장애아를 출산한 근로자는 6명뿐이고, 원고들 외 5명은 유산을, 원고들인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다. 유산과 질환아 출산의 원인으로 원고들의 근로조건과 작업환경이 꼽혔고 모(某) 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역시 그러한 결과를 내놓았다. 원고들은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한 이유는 이러한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므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은 원고들의 자녀인 선천성 심장질환아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의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신청을 거부하였다(1차 거부처분). 그러나 원고들은 태아의 심장질환 발병 당시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으므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인 원고의 질병으로 보아야 하고, 산재보험법의 적용 여부는 질병 발생 당시이므로 그 뒤 근로자 지위를 상실하였다고 해서 산재보험의 급여가 거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다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원고들이 초진소견서 등을 제출하지 않아 자료 보완을 요청하였고 그 후 자료 제출이 되지 않자 민원서류 반려처분을 하였다(2차 거부처분). 이에 원고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1차 거부처분과 2차 거부처분이 사실상 하나의 사건이며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모두 취소하였다. 그 이유로 서울행정법원은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하므로, 여성 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하며, 태어난 영아는 “근로자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현행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재해가 발생할 것, 다시 말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만을 요건으로 할 뿐이지, 질병의 발병 시점이나 보험급여의 지급 시점에 재해자 또는 수급권자가 여전히 근로자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므로,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사정만으로 그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이제는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변모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보았다.

특히,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에서 배제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와 태아를 업무에 내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이고, 산재보험 영역에서 국가의 ‘모성 및 태아 생명’ 보호 의무를 방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는 우리 산재보험법의 입법목적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은 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제1심의 판결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취소하였다. “여성 근로자가 임신 중에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경우 그 자녀의 질병을 산재보험법상 근로자 본인에 대한 업무상 재해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가 본 사건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는 전제인데, 원심은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양급여의 청구권과 수급권이 분리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 산재보험법 제36조 제2항이 수급권자의 청구에 따라 급여가 지급한다고 규정한 점, 그리고 동법 제88조 제2항이 수급권을 양도․압류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점을 들어, 우리 산재보험법은 체계상 수급권과 청구권을 분리하여 수급권자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차단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출생한 장애아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가는 별론으로 하고, 여성 근로자가 수급권자가 아닌 이상 그가 직접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원고인 여성 근로자의 요양급여처분은 부적법하다는 것이다(밑줄은 글쓴이 강조).

그러나 대법원의 견해는 달랐다. 먼저 전제가 되는 쟁점인 ‘태아의 건강손상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조항에 대하여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할 때 법원으로서는 가능하면 입법권을 존중하여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존속하고 효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적 법률해석을 선택하여야 한다”라는 점을 판시한 다음, 이의 헌법적 근거를 「헌법」 제32조 제4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ㆍ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아니한다”와 「헌법」 제36조 제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에서 찾는다. 그리고 “근로제공을 통한 여성의 직업 수행의 영역에서 위 헌법 규정들이 갖는 의미를 찾자면,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고 설시한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태아는 권리능력이 없으므로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 그리고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고를 당하거나 업무상 질병에 걸린 경우, 지급하는 것으로 장해급여와는 달리 사고와 질병에 따른 노동능력 상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 수급과 관련하여 기초적인 법률관계가 성립한 이상, 근로자가 그 후로 근로자의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생성된 보험급여 수급관계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으므로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되어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하였다.

그렇다면 고등법원이 지적한 요양급여의 청구권과 수급권이 분리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어떤 답변을 내놓았을까? 대법원은 출산 후 요양급여의 수급자를 출산아가 아닌 그대로 여성 근로자로 본다. 그리고 “출산 이후에도 여성 근로자를 요양급여의 수급권자로 보더라도, 그 요양급여의 내용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내용의 요양급여를 제공받기 위하여 출산 이후에 요양급여 청구서를 모(母)인 여성 근로자 명의로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자녀인 출산아 명의로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할 것인지는 법기술적인 제도 운용의 문제일 뿐이다.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의 건강손상이라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한 것이 맞다면, 출산 이후에 요양급여 청구서를 누구 명의로 작성하여 제출하였는지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 제공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는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제1심과 원심, 그리고 대법원의 판단까지 모두 혼전을 거듭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의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실정법의 목적론적 해석(헌법합치적 해석)과 문리적 해석 중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제1심은 목적론적 해석으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의 신속ㆍ공정한 보상과 근로자 보호라는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맞춰 해석하였고, 원심은 출산아의 질병을 곧 여성 근로자의 질병이라 할 수는 없으며, 산재보험급여의 청구권자가 곧 수급자인 현 산재보험법상의 제도에 따라 청구권자는 여성 근로자, 수급자는 출산아로 분리되는 것은 실정법상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정석적인 문리적 해석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목적론적 해석을 한다. 「헌법」 제32조 제4항 여성 근로자의 보호 조항과 「헌법」 제36조 제2항 모성 보호 조항을 바탕으로 현 산재보험법을 위 헌법 조항에 맞게 해석하였다. 그리고 각 법원의 판시 중 논리적으로 취약했던 점을 보충하였는데, 태아의 권리능력 없음에 대해 제1심은 “법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법기술적인 제도 운용의 문제”로만 보았으나, 대법원은 권리능력 없음이 바로 모체와 태아가 ‘단일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태아의 건강손상이 바로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신체적 업무상 재해임을 논증하였다. 그리고 원심이 지적한 요양급여의 청구권과 수급권이 분리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요양급여 청구서를 여성 근로자의 이름으로 할지, 출산아의 이름으로 할지는 법기술적인 문제로서 요양급여의 청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대법원의 판시는 제1심의 추상적이었던 목적론 해석을 구체적으로 보완하였으며, 제2심이 가지는 문리적 해석의 현실적 타당성 결여를 헌법합치적 해석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적 발전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하급심이 가졌던 취약점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사견으로는 목적론적 해석은 문리 해석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해석자인 사법부의 광범위한 목적론적 해석은 새로운 법창조로서 입법자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점 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소송 과정에서 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일어나지 않았는가이다. 산재보험법 제5조(정의) 제1호인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에서 업무상 재해를 근로자에 한정한 것이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권과 「헌법」 제32조 제4항 그리고 「헌법」 제36조 제2항 위반임을 주장하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입법자에게 태아도 업무상 재해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도록 촉구하였다면 이 문제는 입법론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양승엽(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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